1970~1980년대 '조국 근대화'의 기수로 불렸던 국립 부산기계공고 총동창회가 요즘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시끄럽다.
가뜩이나 실업계 고교의 위상 추락으로 심기가 불편한데 최근 교육부가 국립학교 운영제도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기계공고의 공립화를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의 주요 기조인 분권화의 불똥이 이곳에도 튄 것이다.
동문들 사이에선 "모교가 공립화돼 부산시로 이관되면 재정지원이 줄어 들어 '전국 최고의 기능인 양성소'라는 위상이 급락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실업고는 사라지고 인문고만 남는 것 아니냐'는 자조섞인 목소리도 흘러 나온다.
직업교육의 위상 추락은 소위 명문 실업고마저 흔들어 놓고 있다.
특히 2001년 전체 산업의 30%를 차지하던 제조업 분야가 2010년에는 27.4%까지 줄것으로 보여 실업고의 정체성 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명문 상고출신으로 현재 금융기관 중견간부인 K(47)씨는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 때만 하더라도 모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최근엔 아예 모교를 숨기려는 동문도 많다"고 씁쓸해했다.
실업계 고교의 추락은 우수 학생들의 유입이 사실상 끊기면서 비롯됐다.
부산기계공고는 한 때 우수 학생들이 전국에서 몰려들던 곳이다. 학비 무료와 기숙사 제공, 고교 캠퍼스로는 최고인 6만평의 부지에 우수한 연구 시설 및 취업 보장 등이 이들을 유인했다. 따라서 사회 각계, 특히 제조업 부문에서 많은 동문들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학벌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우수 학생들의 입학이 크게 줄었다. 한 때 중학교 전교 성적 3%내였던 신입생 커트라인이 올해는 50% 이하까지 떨어졌다.
B중 교사는 "현재 인문계 입학 커트라인과 비슷한 실업계 학교는 기계공고를 포함해 3개 정도에 불과하다"며 실업계 고교의 위상을 설명했다.
한때 은행원 산출의 요람 역할을 했던 주요 상고들의 이야기도 이제 '전설'이 됐다.
부산은행은 지난 1993년을 끝으로 고졸 신입사원을 선발하지 않고 있다. 부산은행 관계자는 "대졸 출신 인력이 풍부하다 보니 특별히 상고 출신만 따로 뽑지 않는다"고 말했다.
과거 은행창구 직원자리를 독차지했던 부산진여상이나 부산여상 등 소위 명문 여상들. 이들 학교도 이제는 진학 희망자들이 절대 비율을 차지하면서 정체성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부산기계공고 오영복 교장은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지난해 LG와 삼성 등 대기업에 150명이 입사할 정도로 아직도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온다"며 "앞으로 출산율 하락 현상까지 겹쳐 기초산업 인력난이 심화될 것으로 우려되는 만큼 실업계 고교의 인센티브 제공 등 정부차원의 특단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1부 광역이슈팀
신수건 이노성 배성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