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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 11월 경남 가족 여행지 주말 나들이 가볼만한곳 명소 추천 BEST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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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etra 작성일2024-09-27 11:00 조회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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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구려$ 전의역 ▣​[코레일 철도역 스토리보드: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영업개시​전의역은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전의면의 중심지에 위치한 역으로 경부선이 개통되기 전이었던 1903년부터 역사를 설립하였으며 1941년 4월 현재의 역사가 신축, 준공되었다. 역사는 55㎡ 규모의 부대건물을 갖춘 129㎡ 규모의 목조 슬레이트 단층 역사로 지어졌는데, 현대에 들어와 이용객들의 편의를 위해 리모델링을 거쳐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리모델링이 되었으나 전체적으로 일제강점기 당시의 옛 모습이 잘 남아있어 그 정취가 남다르다. 2004년 4월 1일 고속철도 개통 이후 전의역에 서울-대전 간 무궁화호가 정차하면서 이용객의 접근성이 크게 성장하였다.일제강점기 건축양식이 돋보이는 전의역▣ 경부선 전의역 ▣​◎ 세종시의 동쪽을 가로지르는 경부선에는 세종시 관내 많은 철도역이 들어서 있다. 그 중 현재 세종시의 관문이나 다름없는 조치원역은 명실상부 대표적역으로 부산고구려$ 거론되고, 추후 세종시의 새로운 관문이 될 서창역이나 화물취급을 위한 부강, 매포 등 가지각색의 철도역을 볼 수 있다. 1905년 경부선 개통에 맞춰 영업을 개시한 세종시 전의역도 고유한 개성을 자랑한다. 바로 1940년대 건축양식이 고스란히 반영된 단층 목조 슬레이트 역사(驛舍)와 박공 지붕 형태를 간직한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란 점에서 전의역의 존재가치가 돋보인다. 본래 경부선 전의역은 경부선 개통에 앞서 1903년 우선 준공되었고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영업을 개시한 특이한 이력이 있으며, 1940년대 경부선 복선화에 맞춰 현역사(驛舍)로 증축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120년 유구한 연혁과 80년을 훌쩍 넘긴 현 역사(驛舍)는 길게 흘러온 세월에도 굳굳히 서있는 고풍스러움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전의역을 통과하는 경부선 무궁화호 ▣​​▣ 전의역 대합실 및 승강장 ▣​◎ 경부선의 철도역으로 개통했지만 정작 서울이나 부산 부산고구려$ 등 주요 도시를 오가는 열차편이 극히 드물어 예나 지금이나 인적이 한산한 전의역이다. 개통 이후 한동안 전의면 주민들의 주요 생활권인 천안으로 연계를 위해 천안-대전간 완행열차 정도만 정차했고, 수도권을 오가는 열차는 서울-제천-안동간 열차만이 유일했다. 다행히 1993년이 되어서 서울-부산간 통일호가 정차하며 본격적으로 경부선 지역을 오갈수 있게 되었고, 2005년 이후 호남,전라 등 주요 간선 무궁화호가 일부 정차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전의면 거주민 수가 나날히 감소중이고 자가용 보급 등으로 철도의존도가 줄어들어 현재 하루 이용객은 300여명에 불과하다. ​3.1.운동의 의지를 이은 전의만세운동▣ 전의역전 전의면 ▣​◎ 전의 이씨의 본관으로도 유명한 전의면은 세종시를 구성하는 여러 동(洞), 면(面) 중 하나로 천안과 조치원을 잇는 1번 국도의 주요 경유지 중 한 곳 이다. 약 5천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이곳은 조선시대부터 부산고구려$ 서울과 청주, 대전, 공주 등 여러 길이 나눠지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이것이 마을을 만드는 주된 주춧돌이 되었다. 또한 주민이 모이고 여러 교통로란 점 때문에 전의는 경부선 철도가 경유하고 역(驛)이 세워지게 되었다. 물론 성씨의 본관이 있는 동네이기에 전국 곳곳에 돌고도는 이야기처럼 과거 철도가 지어질 적 주민들이 철도에 대한 괴담과 불만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역시 존재한다. 다만 전의쪽에 철도를 놓을때 일제가 전의주민들을 투입해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경부선 철도 개통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 전의전통시장 입구 ▣​◎ 강제로 노동력을 착취당한 전의주민들의 불만은 날로 쌓이고 쌓였지만 일제의 폭정에 감히 누구도 나설 수 없었다. 그렇게 20년이 흘러 전의에 거주하던 '이수욱'이란 청년이 고종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하던 중 3.1.운동을 목격하게 되고 부산고구려$ 이를 마을주민들에게 알리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이수옥은 전의와 서울을 기차로 오가며 학당에서 학문을 익히던 당시로선 신지식을 배우던 젋은 선구자였다. 어릴적 마을주민들을 일제가 착취해 철길을 만들게 하는것을 눈앞에서 목격했으니 일제에 대한 반감이 많을수 밖에. 그렇게 고향 전의로 돌아온 이수옥은 친구들을 불러모아 전의장날이 열리는 날에 맞춰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계획, 3월13일 전의장터를 중심으로 '전의만세운동'을 부르며 마을 곳곳에 태극기로 물들였다. 곧바로 일제는 수비대를 급파, 마을주민들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주동자들을 체포해 모진 고문과 태형을 가해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뒷따랏다. 주동자였던 이수욱은 이후 1년6개월 징역을 선고 받았고, 동료들 중 대다수는 옥사했다니 정말 목숨을 건 독립운동이였다. ​​▣ 전의만세운동 기념비 ▣​◎ 생과사가 오갔던 만세운동이였지만, 그들이 바랬듯 조국은 해방되었고 하나씩 잊혀진 운동들을 기리며 다시금 후손들에게 호국과 부산고구려$ 애국심의 돋보기로 삼고 있다. 애국지사 추모비가 세워지며 만세운동을 계획한 이들에게 서훈이 보훈되는 등 비정상이였던 과거는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개미고개와 우회했던 구 경부선▣ 전의와 전동사이 위치한 개미고개 ▣◎ 구 1번 구도인 운주산로를 따라 운전을 하다 만나는 개미고개. 세종시 관내 전의면과 전동면을 연결하는 고갯길로 산이 개미허리처럼 생겨 이러한 명칭이 붙여졌다 한다. 높은 고도를 오르는 고개는 아니지만 산등선과 조천(鳥川)이 미곡리와 청람리간을 단절해 예로부터 많은 통해량이 있던 길목이라 중요성이 남달랐다. 과거 백제때 세워진 운주산성이 개미고개까지 산성을 쌓아 신라, 고구려를 방어했고 조선시대 충청지역(천안)에서 한양으로 조곡을 올리던 운반로로 활용되던가 하면, 6.25전란 당시 이곳에서 북한군에 맞써 4일간 진격을 지체시키는 큰 성과를 달성하기도 했다. 이 때 우리나라를 도우러 머나먼곳을 떠나온 미군들은 북괴군에 부산고구려$ 항전하다 500여명이 산화한 치열했던 그날의 기억이 아스라히 묻혀있다. 휴전이후 정부는 개미고개길 정상에 추모공원을 조성, 전사한 군인들과 미군을 위해 넉을 기리고 있다. ​​▣ 6.25. 추모 공원 ▣​​▣ 개미고개 아래를 지나는 경부선 성곡터널 ▣◎ 1900년대 경부선이 건설될 적, 당시 철도 기술력으로 터널과 교량을 최소화하며 지어졌고 때문에 경부선 선형은 굽이굽이 천(川)을 보는듯 했다. 충청도를 지나는 경로상 경부선 철도는 구1번 국도를 따라 놓여졌고 결국 가장 터널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개미고개를 통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약 200m 길이의 짧은 단선 성곡터널이 건설되어 경부선은 대전으로 순탄히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1940년대 경부선 복선화 사업이 진행되자 성곡터널을 좀 더 완만히, 그리고 곡선반경을 완화시키기 위해 현 복선용 성곡터널을 개통 및 이설했고 현재까지 사용중인 부산고구려$ 경부선 터널로 남아있다. 참고로 성곡터널은 서울에서 출발한 경부선열차가 처음 만나는 터널로 무려 130km 지점에 위치하니 경부선 철도가 얼마나 자연을 거스리지 못하고 건설되었는지 체감된다. ​​▣ 폐터널이 된 구 성곡터널 ▣​ 전의역 소개 및 연혁​☞ 전의역 연혁​- 1903년 04월 30일 , 구 역사(驛舍) 신축- 1905년 01월 01일 , 경부선 개통으로 영업 개시 - 1941년 04월 01일 , 현 역사(驛舍) 준공- 1991년 09월 01일 , 소화물 취급 중지- 1993년 05월 11일 , 군전용선 설치 및 취급개시​​▶ 관련역 보기​▣ 소정리역 ▣ 수도권을 벗어나 처음 만나는 작은 간이역 ▣ 소정리역 ▣ ◎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 전동역 ▣ 사람발길이 끊긴지 벌써 20년 ~ ▣ 전동역 구내 ▣ ◎ 천안을 지나 경부선 부산고구려$ 철도는 본격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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