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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cho 작성일2024-08-14 23:18 조회1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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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원 엘리트바둑이 운영위원으로 선출된 최명훈 9단, 바둑 행정 무대 등장약 15년 전 연구생 총감독 시절 ‘영재 입단대회’ 창설한 주인공“역사에서 3000년 이상 검증된 바둑, 저변 확대해 널리 알리고 싶다”기사승인 2024-02-21 14:27:32































한국 바둑의 총본산, 한국기원 운영위원으로 선출된 최명훈 9단. 사진은 세계 여자 바둑 최강자 최정 9단을 상대로 승리하면서 우승을 결정짓는 장면이다. 한국기원​한국 ‘마지막 잎새’ 신진서 9단이 중국 상하이에서 연일 승전보를 전하고 있다. 한⋅중⋅일 3국이 각각 5명씩 최정예 프로기사를 선발해 연승전 형태로 격돌하는 ‘바둑 삼국지’ 농심신라면배 이야기다.​우승상금 5억원으로 세계 최대 규모 기전이라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국가 명예를 걸고 맞붙는 대결인 만큼 전 세계 바둑 팬들이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대회 중 하나다. 이렇게 중차대한 무대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모두 패한 가운데 홀로 남아 한국 우승을 책임지는 기사가 바로 신진서 9단이다.​한국 바둑에 신진서가 없었다면 어떤 상황에 내몰렸을까. 만약 신 9단의 프로 데뷔가 늦어져 지금처럼 대성하지 못했다면 중국 바둑을 상대할 수 있었을까. 역사에 만약이라는 엘리트바둑이 가정은 없다지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세계 바둑 랭킹 1위 신진서 9단은 2012년 7월17일 제1회 ‘영재 입단대회’를 통해 프로가 됐다. 당시 12세였던 2000년생 신진서가 머지 않은 미래에 프로가 되리라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다만, 시기가 문제였다.​신진서는 당시 연구생(한국기원 소속으로 프로기사를 준비하는 바둑 엘리트) 최고 레벨인 1조 상위권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2조에서 1조로 이제 막 올라가는 단계였기 때문에 엄밀하게 따진다면 2012년도엔 ‘입단 후보’로 볼 수는 없었다.​실제로 신진서는 입단 전 연구생은 물론 아마 강자들이 모두 출전한 전국 최강전에 출전했으나 입상하지 못했다. 당시 신진서와 겨룬 아마 고수들은 12살 신 군이 장차 한국 바둑의 미래를 짊어질 최고의 기재임엔 틀림없지만, 지금 당장은 ‘내가 더 강하다’고 느꼈다.​알파고를 꺾은 유일한 인간으로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친 천하의 이세돌 9단도 프로 데뷔 이후 초반엔 선배들의 노련미에 밀려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이는 프로 초년병들이 대체로 겪는 현상이다. 따라서 ‘역대급 천재’ 신진서도 프로가 되기까지 몇 년, 그리고 프로 데뷔 후 또 다시 몇 년의 담금질 엘리트바둑이 과정이 필요할 터였다. ​그러나 바둑계에서 딱 한 사람, 최명훈 9단은 그래서는 중국 바둑계 ‘인해전술’을 당해낼 수 없다고 분석했다. “조훈현부터 이창호, 이세돌에 이르기까지 한국 바둑은 불세출의 천재 기사가 등장해 층이 두터운 중국 기사들을 추풍낙엽처럼 쓸어버리고 정상에 오른 역사의 반복이었다. 지금 이창호와 이세돌 뒤를 이을 신진 기수를 육성하지 않는다면 미래가 위태롭다.”​최명훈 9단이 2009년부터 약 2년 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고심하고, 새로운 입단대회 틀을 만들게 된 계기였다.​다만 아쉬움도 남았다. 최 9단은 당초 연구생 나이 제한을 15세로 획기적으로 낮추고, 영재 입단대회는 초등학생 나이에서만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보수적인 바둑계에서 이와 같은 급진적인 정책이 쉽게 받아들여질 리 만무했고, 수차례 회의와 토론회, 포럼 등을 거친 끝에 최종적으로 중학교 2학년까지 기회를 주는 것으로 결정됐다.​최명훈 9단은 이때를 돌아보며 “영재 입단대회가 신설된 것 자체는 반가운 일이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영재 입단대회를 만들자고 건의할 때 강조했던 취지는 어린 나이에 덜 여물었더라도 빠르게 프로 무대에 진입시켜 승부 경험을 쌓고 대성하도록 만드는 데 있었다. 당시엔 실력이 약한 연구생들을 프로로 엘리트바둑이 받아준다는 데 거부감이 있는 기사들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이후에는 ‘명훈이 형 말이 맞았다’, ‘그때 명훈이 형 말을 들었어야 하는데’라고 얘기해주는 후배들이 많아졌다. 시간이 지나다보면 점차 처음에 제안했던 것과 비슷한 형태로 흘러갈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이어 “당시 반대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생각이 바뀌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나중에는 가장 크게 반대했던 사람들도 이런 룰을 만들기 잘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바둑 국가대표 상비군 코치를 역임한 최명훈 9단. 한국기원​실제로 현재 한국 바둑계에선 영재 입단대회 참가 연령을 낮추고 국가대표 육성군 선발 나이 제한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명훈 9단이 바둑계 백년대계를 위해 주장했던 일이 약 15년이 흐른 지금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최 9단은 한국기원 운영위원으로 출마하면서 그동안 줄기차게 제안해왔던 두 가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첫 째는 프로기사들의 목소리를 좀 더 정확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 둘 째는 바둑 보급 저변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현재 바둑계는 ‘알파고 특수’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이후 지금까지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 바둑의 장점을 높이 산 기업이나 지자체 등의 후원으로 프로기전을 비롯해 각종 엘리트바둑이 아마대회가 전국 각지에서 열리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바둑 보급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 묻는다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전문가들이 대다수다.​이에 미래를 앞서 내다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자’ 최명훈 9단이 행정 전면에 나섰다. 최 9단은 “저의 장점은 새로운 제도나 규정 등을 만드는 데 있다”면서 “어떤 제도나 규정을 만들 때 여러 가지를 생각하기 때문에 ‘룰을 만드는 능력이 좋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고 설명했다. “미래를 내다보고, 새로운 제도를 만들고, 타당성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 저의 최대 장점”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최명훈 9단에게 기대하는 후배 기사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바둑 국가대표 상비군 코치를 역임한 후 최근엔 다시 바둑계 일선으로 돌아와 바둑리그 감독, 바둑TV 해설 등에서 군계일학의 모습으로 맹활약 하고 있는 박정상 9단이 있다.​일찌감치 프로 바둑계에서 활약했던 박 9단은 선후배 프로기사들로부터 ‘바둑계 살아 있는 역사 교과서’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바둑과 관련된 일에 정통하다. 생중계 해설 때마다 그가 푸는 ‘썰’들은 항상 바둑 팬들을 즐겁게 한다.​박 9단은 신예 시절 출전했던 대회를 회상하면서 최명훈 9단이 후배들에게 엘리트바둑이 끼친 영향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2004년 제8회 SK가스배 신예프로10걸전에서 프로 데뷔 후 첫 우승을 차지하고 같은 해 바둑대상 신예기사상을 수상했던 박정상 9단은 “SK가스배는 우승자가 상금 10%를 젊은 프로기사들 연구 모임 ‘소소회’에 기부하는 전통이 있었다”면서 이는 “대회가 탄생한 배경과 궤를 같이 한다”고 설명했다.​SK가스배는 최명훈 9단에게 개인적으로 후원을 하겠다는 스폰서의 제안을 최 9단이 정중하게 사양하고, 대신 후배들을 위한 신예 기전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면서 시작된 대회다.​박 9단은 “선배 기사인 최명훈 9단이 SK가스배 창설에 기여했던 것처럼, 후배 기사들도 우승 상금의 일부를 쾌척하는 방식으로 바둑계 선순환 구조를 만드려 했다”고 부연했다. 최 9단이 쏘아올린 공이 바둑계 전체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 사례 중 하나다.​



바둑리그 명문 구단 정관장 천녹 감독으로 부임한 최명훈 9단은 지난해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리고 준우승을 기록하는 성과를 냈다. 한국기원​최명훈 9단은 프로기사회 부회장, 대의원 등을 약 20년 가까이 역임하면서 바둑 발전과 관련된 수많은 제언과 제도 창설에 기여해왔다. 대표적으로 전문 심판제 도입이 있다.​바둑은 ‘공정함’을 생명으로 하는 종목이다. 다른 스포츠 종목에 비해 ‘판정 분쟁’이 엘리트바둑이 사실상 없는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극히 적다. 그럼에도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 채택 등 본격적으로 스포츠 무대에 진입한 이상 심판 역량 강화는 필수적이다.​바둑계에서도 심판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해 선수들 입장에서 억울한 상황이 발생하는 사례가 드물지만 간혹 있다. 최 9단은 이러한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나아가 아시안게임을 넘어 올림픽 정식 종목 진입을 노리고 있는 바둑이 ‘전 세계에서 가장 공정한 스포츠’라는 타이틀을 획득할 수 있도록 ‘심판 전임제’에 대해 건의해왔고 최근 결실을 맺기도 했다.​최 9단은 “돌아가신 故김수영 사범님이 ‘바둑판을 짊어지고 대중 속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제안했던 것을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다”면서 “바둑 보급 일선에서 직접 발로 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바둑은 과거 스포츠 진입 당시 ‘1000만명 서명 운동’을 벌이는 등 사회적 인지도가 상당히 높았지만 현재는 바둑 인구가 줄고 교육 일선에 있는 바둑학원 운영 등도 다소 어려워진 상황이다. ​한국기원 운영위원(당연직 이사 겸임)으로 선출된 최명훈 9단은 한국 바둑 총본산에서 가장 최우선적인 가치로 ‘바둑 보급’을 제창하겠다는 각오다. 최 9단은 “프로기사를 주축으로 한 한국기원은 물론, 아마바둑을 관장하는 대한바둑협회가 엘리트바둑이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합심해서 바둑 저변 확대에 힘 써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최근 바둑이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현상과 그 원인도 짚었다. 바둑은 ‘미생’을 시작으로 ‘응답하라 1988’, ‘더 글로리’ 등 인기 드라마 소재로 등장하다 최근에는 ‘세작’이라는 아예 ‘바둑 드라마’가 아니냐는 평을 듣는 작품까지 등장했다.​최명훈 9단은 “바둑은 검증된 것만 3000년 이상, 요순시대 기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사실상 5000년 이상 역사를 갖고 있는 종목”이라며 “인류와 함께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우리 일상생활에 이렇게 깊숙이 스며든 종목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 미디어 등에 노출되는 빈도도 높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바둑계는 이런 좋은 콘텐츠를 더욱 잘 살려야 한다”고 역설했다.​“바둑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강하게 길러나갈 수 있는 종목이면서 동시에 바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 또한 많다”고 강조한 최 9단은 “바둑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요소들을 많은 분들이 일상생활에 잘 접목해서, 풍요로운 삶을 사는데 바둑이 일조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말하며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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