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 팔자 시간문제라고 하지만 요즘 물메기 팔자는 한마디로 벼락출세의 실례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예전의 물메기는 곱지 않은 생김새 때문에 아예 생선 취급도 받지 못했고 어부들조차 거들떠보지 않는 처지였다. 어쩌다 그물에 걸리면
재수 없다고 도로 바다에 버리거나 기껏해야 사료로 쓰이던 신세가 근자에 와서는 최고의 해장국 재료로 신분이 수직상승했으니 입신을 해도 여간 한 것이 아니다. 왕년의 형편이 오죽했으면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마저도 물메기를 가리키는 ‘해점어’(海鮎魚)의 속명을 ‘무엇에 쓰는 물고기인지 잘 모르겠다’는 의미의 미역어(迷役魚)라고 적었을까. 하지만 정약전도 물메기의 특성에 대해서는 “살과 뼈는 매우 연하고 무르며 맛도 싱겁지만 곧잘 술병(酒病)을 고친다”고 하였으니 탁월한 해장 효과만큼은 인정한 셈이다.
비록 외모는 흉하지만 물메기로 탕을 끓여 놓으면 아주 개운하고 상큼한 것이 겨울철 별미로는 가히 복국과 쌍벽을 이룬다고 할 만하다. 게다가 단백질, 철분, 칼슘 등 영양소까지 고루 갖춰 겨울철 보양음식으로 그만이다. 조선 후기의 이규경도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호남 부안현 해중에 수점이 있는데 살이 타락죽(우유죽) 같아 양로(養老)에 가장 좋다”며 물메기의 효험을 치켜세우고 있다. 동·남·서해에 고루 서식하는데 알을 낳기 위해 남쪽 연안으로 몰려드는 겨울이 제철이다.
물메기는 이름은 물론 종류도 다양하다. 경상도에서는 물메기 또는 미거지라 하고 강원도에서는 곰치 또는 물곰이라 호칭하며 충청도에서는 물잠뱅이라 하기도 한다. 학술적으로는 쏨뱅이목 꼼치과에 속하는데, 꼼치과에는 물메기 외에도 꼼치를 비롯해서 미거지, 물미거지, 아가씨물메기 등 비슷하게 생긴 다양한 종류가 있다. 지역에 따라 이름과 종자가 뒤섞여 있는 셈이다. 물메기탕을 끓이는 방식도 다양한데 남해안에서는 소금과 재래간장으로 간을 해서 맑게 끓이는 반면 강원도에서는 얼큰하게 끓이며 특히 삼척 인근에서는 묵은 김치를 넣어 시큼하게 끓이는 것이 특징이다. 어떻게 끓이든 산뜻한 국물 맛을 즐기려면 살아 있는 물메기를 쓰는 것이 철칙이다. 물메기로는 탕 외에도 살을 미나리, 고추, 무채 등과 버무려 회무침도 해먹고 떡국을 끓일 때 넣어서 물메기 떡국을 해먹기도 하며 말려뒀다 찜을 해먹기도 한다.
물메기탕을 잘하는 식당은 전국에 많지만 동해안 쪽에서는 속초의 옥미식당(033-635-8052)과 삼척의 바다횟집(033-574-3543)이 유명하며, 남해안 쪽에서는 통영의 분소식당(055-644-0495)과 남해의 대우식당(055-864-3649)이, 서해안에는 서천의 사오정횟집(041-951-0448)이 명성을 얻고 있다. 서울에서는 여의도의 한양곰치국(02-780-7894)과 서소문의 영덕물회(02-752-0584), 역삼동 고래불(02-556-3677) 등에서 물메기탕을 먹을 수 있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대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