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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우산악회


이런 동영상이 있길래 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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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2008-08-05 00:00 조회7,8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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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박정희대통령 취임 1년간 발자취 중에 모교 방문영상이 있어서 퍼 왔다. 스크롤 바 마지막 약 30mm 남겨두고 보시면 나옵니다.


우리나라 기능교육과 훈련은 1973년 이후 본격적으로 실시되어 그 역사가 일천함에도 불구하고 매회 호성적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종합우승 7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바 있다. 이는 오로지 朴대통령의 지대한 관심과 각별한 지원, 각급지도자들의 열성, 그리고 공고생과 훈련생들의 땀흘려 각고한 노력의 결정으로서 우리나라 산업발전에 큰 초석의 하나를 이루었다. 朴대통령은 지방순시 차 부산에 들를 때에는 海蕓臺 관광호텔에 머물렀는데 언제나 아침 일찍 일어나서는 맞은편 산위의 釜山기계공업고등학교를 바라보았다. 기숙사생 전원이 아침 6시에 일제히 기상해서 6시 반쯤부터 모든 작업장에 전등이 켜지며 등교전 촌각을 다투어 실습에 전념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언제나 흐뭇해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박정희 인터넷 도서관에서

 

 
`박정희 경제개발 회고록'경제정책 30년사'
2006년 경제회고록 증보개정판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낸
김정렴 전비서실장(82세) 특별 인터뷰
 
만난 사람 = 김진 논설위원
[영상촬영 : 중앙방송, 이병구 기자]
2006년 8월 10일
 

82세의 김정렴씨는
1980년 8월 주일대사에서 물러날 때까지 36년간 공직에 있었다.
재무.상공장관을 비롯해 대부분 경제 분야였다.
그래서 그는 한국 경제 성장의 살아 있는 증인이다.
 
여공·공고생을 사랑한 박정희
1976년 부산 기계공고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실습생을 격려하고 있다.
왼쪽은 김정렴 비서실장, 오른쪽은 오원철 경제2수석이다.
박 대통령과 김 실장, 오 수석은 ‘박정희 드라마’의 주인공들이다
 
 
특히 그는 9년3개월간이나 박정희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그는 '박정희 경제사령관'의 총참모장이었다.

후임 정권 사람들이 박정희 시대를 폄하해도,
 '그때 그 사람들'같은 영화가 박정희를 조롱해도 그는 침묵했다.
 반박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회고록만 썼다.
 
90년 '경제정책 30년사'를 시작으로 일어.중국어.영어로 된 경제성장사가 나왔다.
97년엔 정치회고록 '아, 박정희'도 나왔다.

그는 최근 경제회고록 증보개정판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를 펴냈다.
스스로 "생애 마지막 작업"이라고 말한다.
책 얘기를 듣기 위해 10일 그를 만났다.
그런데 그가 의외로 입을 열었다.
세태에 대해서 말이다.
26년 만이다.

김논설위원 : -노무현 대통령의 이백만 홍보수석은
 "박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고교 교장이라면 노 대통령은 대학총장"
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현 정권의 많은 사람들은
박 대통령의 업적을 별로 인정하지 않는 듯합니다.

김실장: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들은) 솔직히 말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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