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여자 어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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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용 작성일2006-04-19 00:00 조회7,860회 댓글0건본문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가능하다면 꽃밭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숲이 있으면 좋겠어.
개울 물소리 졸졸거리면 더 좋을 거야..
잠 없는 난 당신 간지럽혀 깨워
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아침 길
풀섶에 달린 이슬 담을 병 들고 산책해야지.
삐걱거리는 허리 주욱 펴보이며
내가 당신 "하나 두울~~" 체조시킬 거야.
햇살이 조금 퍼지기 시작하겠지..
우리의 가는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반짝일 때
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래 입맞춤하고 싶어.
사람들이 봐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아주 부드러운 죽으로
우리의 아침 식사를 준비할 거야.
이를테면 쇠고기 꼭꼭 다져 넣고
파릇한 야채 띄워 야채 죽으로 하지.
깔깔한 입 안이 솜사탕 문 듯할 거야..
이때 나직이 모짜르트를 울려 놓아야지.
아주 연한 헤이즐럿을 내리고
꽃무늬 박힌 찻잔 두 개에 가득 담아
이제 잉크 냄새 나는 신문을 볼 거야.
코에 걸린 안경 너머 당신의 눈빛을 읽겠지..
눈을 감고 다가가야지..
서툴지 않게 당신 코와 맞닿을 수 있어
강아지처럼 부벼 볼 거야.
그래 보고 싶었거든...
해가 높이 오르고
창 깊숙이 들던 햇빛 물러설 즈음
당신의 무릎을 베고 오래오래 낮잠도 자야지
아이처럼 자장가도 부탁해 볼까...?
어쩌면 그때는 창 밖의 많은 것들
세상의 분주한 것들
우리를 닮아 아주 조용하고 아주 평화로울 거야.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당신의 굽은 등에 기대 울고 싶어..
장작불 같던 가슴,
그 불씨 사그러들게 하느라 참 힘들었노라..
이별이 무서워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노라..
사랑하기 너무 벅찬 그때
나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말할 거야.
겨울엔 백화점에 가서
당신의 마른 가슴 덥힐 스웨터를 살거야.
잿빛 모자 두 개 사서 하나씩 쓰고
강변 찻집으로 나가 볼 거야.
눈이 내릴까...
봄엔 당신 연베이지빛 점퍼 입고
나 목에 겨자 빛 실크 스카프 메고
이른 아침 조조 영화를 보러갈까...?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같은..
가을엔 희끗한 머리 곱게 빗고
헤이즐럿 보온병에 담아 들고
낙엽 밟으러 가야지.
저 벤치에 앉아 사진 한번 찍을까?
곱게 판넬하여 창가에 걸어 두어야지..
그리고 그리고 서점엘 가는 거야.
책을 한아름 사서 들고 서재로 가는 거야.
나 늙으면 그렇게 그렇게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 황정순의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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