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7년 오스트리아의 성 토마스 수도원 뜰에서 수도사 멘델은
다윈의 진화론을 증명하기 위해 완두콩을 재배하고 있었다.
당시 수도원은 과학 연구를 장려했기 때문에 집안이
가난했던 멘델은 공부하기 위해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는 35세에서 43세까지 가로 20m, 세로 15m밖에 안 되는
정원 한 귀퉁이에서 225회나 완두콩을 심고 거두어 12,980개의
잡종을 얻었고, 그것을 통계 처리하는 엄청난 작업을 계속했다.
당시의 생물학자들은 생물학에 수학적 개념을
적용시킨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때였다.
8년 동안의 실험 끝에 마침내 멘델은 자연선택에 의해 우성만
남고 열성은 소멸한다는 다윈의 가설을 뒤집는 결과를 얻었다.
그는 어떤 세대에서도 우열의 형질은 분명하게 나오고 있으며,
자연선택에 의해 형질이 혼합되어 중간적이
것이 나오지 않음을 발견했다.
1866년 멘델은 <식물잡종의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지만
논문을 이해하지 못한 생물학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렇게 묻혀 버린 논문은 그가 세상을 떠난 16년 뒤에야 빛을 보았다.
네덜란드의 드브리스, 독일의 코렌스, 오스트리아의 체르마크라는
세 사람의 과학자가 비록 사용한 재료는 달랐지만
멘델과 같은 연구를 시작했다.
세 사람은 멘델의 논문을 발견하고 무려 34년 전에, 전문 생물학자도
아닌 신부가 자신들이 이해하기에도 어려운 통계 처리를
이용해 유전 법칙을 이끌어 냈다는 사실에 놀랐다.
비록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멘델이 8년 동안 좁디 좁은 정원에서
얻어 낸 땀의 결실은 그의 업적으로 남아 ‘멘델의 유전 법칙’으로
재탄생했으며, 그는 유전학의 창시자로 평가받게 되었다.
신부의 신분으로 8년동안 225회의 실험을 통하여
12,980개의 잡종을 얻어 그것을 통계 처리하는
엄청난 작업의 결정체임을 알아야 합니다.
미 사 봉(미래사회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