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조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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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청산 작성일2010-08-26 00:00 조회8,970회 댓글0건본문
[손동우 에디터의 정동만필] ‘내조의 여왕’ 손동우 에디터
손동우 에디터
동료:아니, 당신은 신재민 마누라처럼 좀 할 수 없어? 도대체 하루 종일 집에서 놀면서 뭐하는 거야?
부인:그게 무슨 소린데?
동료:신문도 안 봐? 위장전입 척척해서 애들 셋 보두 특목고에 일류대학 보냈지, 아파트·콘도·오피스텔 샀다 팔았다해서 시세차익 왕창 남겼지, 게다가 그 뭐냐, 남편이 잠시 놀고 있을 때 위장취업해서 수천만원 수억원 벌었다더라. 그 마누라 10분의 1, 100분의 1이라도 해야 할 것 아냐?
부인:그러는 당신은 뭐 했는데? 당신도 신재민이하고 똑같이 기자했으면서 한 게 뭐야? 무슨 대선 캠프 이런데서 활동을 했어, 차관을 했어, 장관을 했어? 당신이 신재민이 만큼 싹수를 보였으면 나도 그 여편네 몇 배 잘 할 수 있어. 왜 이래, 이거!
동료:뭐, 싹수? 진짜 말 다 한 거야?
아내:반도 못했다,왜?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어떻게 사는지 알기나 해? 참고 참고 있으니까 증말 왕짜증이야!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후보자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쯤되면 그 뒤의 상황은 ‘안봐도 비디오’일 터. 나는 애꿎은 부인을 닥달한 뒤 밤새 죄책감과 열패감에 시달렸을 동료를 위로했고, 우리 두 사람은 윤씨가 탁월한 ‘내조의 여왕’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아니, ‘내조의 여왕’으론 턱없이 부족하겠다. ‘재테크의 클레오파트라’ ‘불법의 빅토리아 여왕’ ‘의혹의 측천무후’ 쯤으로 불러야 조금은 성이 찰까.
경향신문에서 이미 추적보도한 바 있지만 윤씨의 솜씨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신기(神技)에 가까운 그녀의 절세무공을 찬찬히 음미한다는 뜻에서 다시 한번 되짚어 보자. 그녀가 주도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다섯 차례의 위장전입은 그야말로 기본기 중의 기본기, 군에 입대하면 훈련소에서 가장 처음 받는 제식훈련쯤 되겠다. 약간의 발품을 팔아야 하는 근면성실과, 불법을 개의치 않는 최소한의 담력만 있으면 가능한 분야이니만큼 긴 설명이 필요없을 듯 하다.
유격훈련쯤에 해당하는 고난도의 부동산 사고팔기야 말로 그녀의 주종목이 되겠다. 신 후보자 부부는 1993년부터 올해 7월까지 17년동안 모두 17차례나 아파트·콘도미니엄·오피스텔을 사고 팔았는데 신 후보자 명의는 경기 고양시 일산동 밤가시마을 303동 아파트, 강원 횡성 두원리 콘도미니엄, 경기 고양시 장항동 레이크팰리스 오피스텔, 서울 광진구 자양동 스타시티 주상복합아파트 4곳 뿐이었다. 나머지 경기 용인시 구성읍 아파트, 경기 고양 장항동 중앙하이츠빌 오피스텔 2채, 경기 양평군 옥천면 신복리 토지 2곳, 경기 고양시 일산동 밤가시마을 702동 등은 모두 윤씨의 명의였다. 고양 중앙하이츠빌 오피스텔의 경우 윤씨는 분양받은 뒤 자신은 거주하지 않고 프리미엄을 붙여 되팔았다. 아파트 투기의 고전적인 방법인 것이다. 이밖에도 용인 구성의 아파트, 경기 양평 신복리 토지 등도 사고 팔 때마다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겼다. 부동산에 관한 한 천부적인 감각을 과시한 셈이다.
부동산 사고팔기 보다 수익 규모는 작지만 가장 높은 난도의 공수낙하훈련쯤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윤씨의 위장취업이다. 윤씨는 2007년 모 설계사 감리업체에 이름만 올려놓고 취업한 것 처럼 꾸며 급여를 타낸 데 이어 앞서 2004년에는 어느 전자부품회사에도 명의만 걸어 놓고 10개월치 임원급여 3천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평소의 물샐틈 없는 인맥관리 능력과 빈 구석을 예리하게 파악하는 동물적인 후각·순발력이 어우러진 개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지난해 3월부터 5월까지 방영된 TV 드라마 <내조의 여왕>에서 주인공 천지애(김남주)는 백수가 된 남편 온달수(오지호)를 대기업에 취업시키기 위해 온갖 험한 일을 마다 않는다. 대학시절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한 수 아래였던 양봉순(이혜영)의 남편이 그 회사의 부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는 봉순에게 허리를 굽힌다. 또 임직원 부인들의 모임인 ‘평강회’에 가입한 뒤에는 임원 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스스로 망가지는 일도 감수한다. 이런 와중에서도 천지애는 사람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상식이나 최소한의 도덕률은 넘어서지 않는다. 아내의 덕분으로 입사한 남편 온달수도 경쟁사에 영업기밀을 넘길 수 있었던 절체절명 유혹의 순간에서 건강한 상식인으로 되돌아온다. <내조의 여왕>은 주인공들의 다소 과장된 연기로 기본적으로 코미디의 성격을 지녔지만, 청년실업이라는 사회적 문제와 거대조직 속에서의 개개인이 겪는 고뇌를 다뤘다는 점에서 슬프기도 한 드라마였다.
그러나 총리·장관 후보자 청문회 과정에서 등장한 ‘내조의 여왕’은 불쾌감과 씁쓸함만 던져주고 있다. 아무리 투기를 해도 그렇지, 어떻게 1년에 한번 꼴로 모두 17번이나 아파트·오피스텔·토지를 사고 팔면서 십수억원의 시세차익을 올릴 수 있단 말인가. 이 정도면 말이 투기지 불특정다수에게 피해를 입힌 범죄나 다름 없겠다. 다니지도 않은 회사를 다녔다고 속여 거액의 임원급여를 타낼 수 있단 말인가.
따지고 보면 ‘내조의 여왕’이 ‘마음껏 내조’를 할 수 있도록 묵인·방조·배후조종했을 남편의 죄질이 더 나쁘다고 할 수 있다. 20년이 넘도록 기자생활을 하면서 펜만 들었다 하면 ‘진실보도’니 ‘사회정의’를 부르짖어 놓고 집에 가서는 아내와 비리를 공모하고 진두지휘했을 남편 신 후보자를 생각하면 분노에 앞서 참담할 뿐이다. 이들 부부는 지금까지 불린 재산으로 공직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5천만 국민 앞에 낱낱이 벗겨져 망신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알콩달콩 살아온 동료 부부의 금슬을 갈라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실속 ‘내조의 여왕’ 얘기도 참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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